[매경의 창] 정부, 기업 투자·고용계획에 규제혁신 화답해야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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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삼성그룹이 2020년까지 3년 동안 180조원을 투자하여 4만명의 노동을 창출하겠다고 발표했다. LG는 1년간 19조원을 투자하여 1만개의 일자리를, SK는 3년간 80조원을 투자하여 2만8000개의 일자리를, 현대차는 5년간 23조원을 투자하여 4만5000개의 일자리를, 한화는 5년간 22조원을 투자하여 3만5000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삼성을 비롯해 현대차, SK, LG, 신세계 등 5대 그룹이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규모는 총 311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7%를 웃도는 규모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재벌 총수들을 만나 투자와 일자리 확대를 요청한 것을 두고 `구걸`이니 `거래`니 비판도 있었다.


그럼에도 대기업들의 잇따른 투자·고용계획 발표는 설비투자가 감소하고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이 우려되는 경제 비상상황에서 국내 투자를 살리는 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대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고용 약속에 이제 정부는 과감한 규제혁신으로 화답해야 한다. 삼성의 인공지능(AI), 바이오, 전장부품 투자 계획에서 보듯 신산업 투자 확대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규제혁신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국회 역시 경제활성화 관련법과 규제혁신 법안에 대한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 문 대통령은 의료기기 분야의 규제 완화에 이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은산분리` 완화를 과제로 제시했다. 빅데이터·드론·자율주행자동차 등 첨단산업 분야의 규제혁신에 속도를 내겠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러한 생각이 여당과 친정부 시민단체들의 반대로 정책이 구체화되기도 전에 좌초될 위기에 놓여 있다. 의료 민영화 반대, 거대 자본의 사금고화 우려 등과 같은 낡은 교조주의적 논리를 앞세우며 대통령의 규제혁신 정책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대통령의 규제 완화 정책이 그들이 주장하는 `개혁`을 후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개혁`의 의미가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개혁(reform)이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치는 것을 의미한다. 유사한 개념으로 `혁신`이라는 말이 있다. 혁신(innovation)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개혁과 혁신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해서 쓰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 내용을 따져보면 큰 차이가 있다.


개혁은 `구조`의 변화이고 혁신은 `질`의 변화를 뜻한다. 시장주의의 구조를 깨버리고 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늘리는 게 이들이 주장하는 `개혁`이며, 시장의 자율을 늘리는 정책은 `개혁의 후퇴`인지 묻고 싶다. 무조건 겉(구조)부터 바꾸고 보자는 혁명적 개혁은 지금의 시대정신에 전혀 맞지 않는다. 헌법이념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라는 기본 구조를 존중하면서 구태와 구습을 타파하는 `질`적 변화를 추구하는 `혁신`이 필요한 때다.


혁신을 부정하는 것은 `수구`다. 진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혁신을 거부한다면 그들 역시 수구다. 수구좌파의 반발 때문에 정부의 규제혁신 정책이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청와대는 당초 20개가량의 핵심 규제혁신 과제를 발표하고 공론화를 통해 해법을 찾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이러한 핵심 리스트에 수도권 규제, 원격의료, 개인정보 보호 등 그동안 진보적 성향의 시민단체가 반대해오던 것들이 포함됐느냐를 놓고 파장이 커지자 매달 핵심 규제 안건을 하나씩 발표하기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개인정보를 가명 처리한 가명 정보는 정보 주체의 별도 동의 없이 통계와 연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여러 차례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합의되었음에도 진보적 시민단체 일부가 강력히 반대하자 추진이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지속가능한 혁신과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경제성장을 `개혁 후퇴`로 매도하며 반대를 일삼는 수구좌파에 끌려 다닌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울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항상 강조하는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잘`살아야 한다. `더불어` 가난해지는 하향평준화를 개혁으로 믿는 세력과는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매경의 창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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